시인 김성기·창작시 806

삶의 질곡

삶의 질곡 /김성기 들녁마다 온통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꽃불놀이 한창이고 외진 산골 상처 난 고무나무 풀잎 명세서 꼭 쥐고 쏟아내는 수액 빈 젖을 물고 무럭무럭 자라는 초록 우량아들 축 처진 가난이 부풀대로 부풀어 희망을 따라붙네 파꽃처럼 지는 세월 꿈을 꾸듯 울고 난 새벽 우주는 해와 달의 각도를 맞추고 느릿느릿 걸어오네 찬란한 꽃잎 지고 영영 즐겁지 않을 시간이 온다 해도 허무하기 짝이 없던 시간의 추억을 더듬더듬 별을 헤며 시를 쓰자꾸나 -202007-

영면

영면/ 김성기 잔대 짚신나물도 열매를 맺고 또 피어 고귀한 생명 산골에 반짝이네 외로운 사람이여 두 눈 꼭 감고 홀로 먼 길 떠나며 슬픔은 만천하에 고하는가 아무도 몰랐던 갑작스러운 이별 장맛비 쏟아지듯 펑펑 울 수조차 없다면 이슬이라도 되면 좋으리 그대여 가슴에 담은 못다 한말 훨훨 날려버리고 낮과 밤 고통 없이 편이 지내시오20200713고 박원순 시장님의 영결식-

열꽃

열꽃 /김성기굽이치는바다 위쌍무지개 뜨고반짝이는 별과 파도가 솟아오르고 있네나의 펜이 무딤을 괴로워하며은빛 해변을 스치는 바람성난 파도의 가슴을 어루만지며별들과 섞인 무성한 여름별빛이 많으면 꿈도 많으리찬란한 오로라를 따라서기러기떼 하늘을 날고갯바위에 늘어진 제비꽃도 살아나지었다 부순 나의 정자로 별이 쏟아지네 -202007-

흔적

흔적 /김성기 어제의 밤을 잊고 죽은 자와 죽어도 산자의 현란한 아침이다 흰 뼈에 붙은 햇살에 싹 틔운 꽃과 벌 나비춤을 춘다 꽃잎 흩날리는 낯선 거리 수런수런 웃음소리 들려온다 인간 세상에서 버티지 못할 혁명은 없다 파란 옷 풀어놓은 하늘로 새처럼 날아보자 희망은 언제나 날아가는 마음 안에 있다 혼신을 다해 숭숭 뚫린 내 마음의 꿀통을 채우며 -20200704, GH 바이러스와의 전쟁-

숨소리

숨소리 /김성기푸른 하늘 같은 그대 없을지라도그 희망을 꿈꿀 푸른 숲이 있으리만일 청춘의 시간을 잠시 유예할 수 있다면조각가의 솜씨로도 새기지 못할 사랑이라는 이름의 고독을 깊이 읽어보리밤이 긴 옷자락을 끌면서슬픔과 환희를 닮은 오묘한 소리를 내어이방 저 방 들락거리며검은 옷이 반짝이길 현관으로 천국의 빛이 수놓아져 있길고요하고도 장엄한 밤이여더 깊고 더 슬픈 나의 시간이여침샘도 마르고혈통 끊어진 것보다 더 슬픈 애상이여유령이 나올듯한 밤의 침실을마치 옛 시인의 노래처럼 채우고 있구나-202007-

한 여름밤

한 여름밤 /김성기 소나기를 기다리며 열정을 접었다 펴는 한낮 금빛 햇살로 지은 추억을 에워싸고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는 성긴 바람 구름 벽화 걸린 여울목의 향가 짧은 해거름에 술렁이는 그림자 청보리 넘실 넘실 숨차게 내달리며 콩잎으로 한 올 한 올 옷을 짓고 저녁노을로 꽃을 피워 소녀처럼 웃는다 *성긴>성기다:조밀하지 않고 헐렁헐렁한, -20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