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

바보 시인을 만나다

시인, 김성기 2016. 1. 5. 03:38

      바보 시인을 만나다 /김성기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은 날 한국의 전통적인 거리 인사동으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고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길로 들어서면 리어카에 담긴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고 화가의 고고한 냄새가 풍기는 화랑과 옛 시대의 골동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서정적인 정서를 지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인사동 골목을 좋아하여 시간이 나면 가끔 찾는 곳이다 감성적이고 담백한 향기가 느껴지던 옛날과 달리 요즘은 관광객들로 더 많이 알려져 부쩍거리는 틈새로 옛 정취를 느껴볼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나쳐야 하기에 조금은 안타까운 거리다 골목 어귀로 깊숙이 들어서면 그림 전시회를 여는 전시장이 보이고 인사동과 거의 한 세월을 함께 해온 s약국 모퉁이를 돌아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인사동14길 골목 안쪽 `귀천`이란 간판이 보이는 한옥이 현재 고천상병 시인의 처조카가 운영하는 찻집이다, 시인과 부인은 이미 작고하셨으나 처조카가 운영하며 시인의 향기를 전한다 천상병 시인은 1993년 4월 28일 세상을 떠났고 고인이 된 천상병 시인의 생가이자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1~2명만 겨우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으로 이용하다 천상병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내부를 약간 개조하여 `귀천`이란 간판이 머리에 닿을 듯 말듯 소롯이 걸려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4개의 테이블과 소파 같은 긴 의자 몇 개가 놓인 작은 찻집에 천상병 시인이 평소 써 내려간 습작 노트와 책들이 한쪽에 진열되어 있으며 소박한 `찻잔을 진열해 놓은 진열장과 귀천`의 유명한 시와 사진 속에서 부부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의 `행복`이란 시화액자가 걸려있다 시인이 옥고를 치를 때에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인이 한옥집에 테이블 한 개와 의자 두개만 놓고 천상병 시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을 따서 이 찻집의 옥호를 ‘歸天’이란 간판으로 내달고 찻집을 운영하며 시인님의 출소를 기다렸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테이블 4개로 개조한 한옥집에서 현재는 시인의 처조카가 찻집을 운영하며 인사동 골목을 오가며 들리는 길손에게 진한 시인의 향기를 전한다 시인을 애도하고 그의 시를 추모하는 사람들과 문인들이 인사동에 오면 들려 가는 곳이기도 하다 살아생전 본디 천성이 착하여 시인과 예술인, 작가, 언론인, 지식인들이 단골 손님으로 부쩍이며 문인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보 시인이란다 성품이 아이 같고 법 없이도 살 수 있었던 시인은 어쩌다가 간첩으로 몰려 그런 끔찍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을까 궁금했지만 고인의 대한 가족들의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것 같아서 아름다운 詩를 가슴에 담으며 찻집을 나섰다 너무도 순수하고 해맑은 고 천상병 시인의 찻집을 나서니 먹구름 몰려오듯 가슴이 먹먹해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시인의 습작 노트에서 천상에 관한 글들이 많았음을 떠올리며 시인은 짧은 생애를 이미 예견한 것일까 행복한 듯하나 너무도 슬프고 불행했던 바보 시인이자 천재 시인의 시를 읊조려본다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시인이 떠난 뒤에 더욱 아름다운 詩 덕지덕지 낀 삶의 때를 벗기며 얄밉도록 각박한 인심에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엔 바보 시인 천상병 시인을 만나러 인사동에 간다 그는 갔어도 착하고 천진한 소년 `천상병은 그 찻집에 살아있기에 추억이 방울방울 맺히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연민이 있고 맑은 그리움이 있다

          -20141023, 인사동 고천상병시인의 `귀천` 찻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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