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

[스크랩] 위층 여자

시인, 김성기 2015. 12. 22. 12:45
      위층 여자
      /김성기(智香) 내가 사는 아파트 위층에 사는 여자 간 밤에 눈이 오듯 어쩌다 마주친다 나비처럼 하늘거리는 흰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에 검은 레깅스(쫄바지)와 두꺼운 흰점 퍼를 걸쳐 입은 채로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든 위층 여자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끔 마주치면 추위에 약한 내 모습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헤비급 스키점퍼를 입고 검은 털모자까지 눌러썼으니.. 나이가 들수록 육신의 면역력은 떨어져 무의식적으로 온몸을 감싼다 위층 여자도 그리 젊은것 같지 않은데 건강미가 살아 있고 감성이 달라보였다 청춘일 땐 꽤 열정적이었을 것 같은.. 엘리베이터 밖은 얼음 빙판으로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하는데 위층 여자는 찬바람을 쌩쌩 몰며 토끼처럼 뛰어 가서 쓰레기봉투를 휙 내던지다시피 하고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려간다 이웃끼리 작은 미소라도 던질 수 있는 여유도 없는 것일까 먼저 달려 간 위층 여자를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또 만났다 제 아무리 빨라도 정해진 규칙대로 기계는 움직일 수밖에 바쁜 것은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기에.. 까칠한 위층 여자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간다 두려움과 삭막함으로 무장한 위층 여자 옷을 입는 감성으로 보아 원래 성품은 느티나무처럼 부드럽고 상냥스러운 것 같다 밤길이 두렵고 사람이 무섭다는 세상 아닌가 집집마다 대문도 걸어 잠그지 않고 이웃과 맛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가을처럼 다정하던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는 없을까 인명경시 풍조가 사라지고 황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인정과 인품이 회복되고 윤리와 도덕이 바로 서는 교육으로 아이다운 순수함과 정직한 세상을 물려주는 노력을 어른부터 게을리 해선 안될 것이다 위층 여자를 통하여 사람의 미소가 봄날처럼 따뜻하고 편안한가를 새삼 느끼며 추위와 가난에 떠는 사람에게 겨울이 결코 춥지만은 않도록 마음의 온정을 나누며 찬 바람 쌩쌩 불고 주먹을 꽉 쥔 위층 여자를 또 만나게 된다면 내가 먼저 그 손을 감싸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다가서야겠다. <20130127>수필
출처 : 문예계간지 <시와 수상문학>
글쓴이 : 智香, 김성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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